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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읍 용계리 마을 풍경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 015b 체념적이고 염세적인 멜로디와 가사 힙합비트에 대조되는 장호일의 지치고 매가리 없는 내레이션 이 노래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버림(세월무상) 아마 92년의 봄 혹은 가을이었던 것 같다. 조치원 자취방에서 테입이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곡 당시는 mp3플레이어가 나오기도 전이서 워크맨이라고 불리던 플레이어를 이용하던 시절이었지 많이 우울했었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 했고 시절도 흉흉했었다. 90년대 초반은 물론 80년대 초반에 비해 평화로웠지만 젊고 예민했던 정신으로는 달게 받아들이기 싫었던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육이란 이름으로 전 국가적 차원의 아동·청소년 학대가 서슴없이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강요받고 공부 외에 사춘기 소년이 누려야 했던 모든 문화적, 육체적 즐거움은 통렬하게 박탈당했다. 가출도 했고 반항도 했지만 지금의 아이들처럼 그 당시 학생신분에서 무슨 힘으로 세상을 바꿀수 있었으랴 그저 괴로워 하고 슬퍼하는 수 밖에 그때의 심정은 이런 노래로 대변될수 있었다. 앨범 자켓 속 4명의 장발족들 또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했을 것이다 항상 슬픈 음악에 빠져살았고 염세적인 소설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 없었기에 미래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미래의 불안함도 전혀 괘념치 않았다 오로지 미래만을 보고 사는 지금의 내 모습은 특히 술 자신 후에 위화감을 일으킨다. 이 노래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당시를 회상해 본다.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 015B 정석원 작사 작곡 그저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다시 내 품에 올 것 같았어 둘러보면 넌 항상 내 주위에 맴돌고 있는 줄 생각했었지 네가 곁에 없는 것은 습관처럼 느껴질 뿐 내가 찾으면 돌아올 줄 알았어 어느 날인가 그녀는 영원히 남의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전화 속 친구의 무덤덤한 얘기에 난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지 너에게 한마디 인사도 못하

조선 천재 최춘삼 굴참나무숲에 갇히다

최춘삼의 호는 해연이고 자는 지공이었다. 선조 말엽 황해도 연남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갖바치여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각종 도구를 손에 익히며 자라 났다. 타고난 손재주와 과학적 천재성을 바탕으로 16세때 기체역학에 의한 6기통 제트엔진을 설계하였으며 이 엔진을 우물에 장착해 아낙네들이 물바가지를 끌어올리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26세 되던 해 시간이동기구 제작을 목표로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였으며 7년 후인 1612년에 시간이동기구를 완성하여 실험운행에 착수하였다. 최초 집에서 기르던 은실이(암캐, 6세)를 탑승시킨 후 기구를 작동해 본 결과 개가 타임시프트에 합류하는 것을 확인하였고 사흘 후 시대를 증명할 만한 몇몇 물건과 휴대용품, 주먹밥 이틀치를 챙긴 후 자신이 직접 기구에 탑승하게 되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 와서 최춘삼은 지금 능내리에 머물고 있다. 능내리는 중호와 연주가 살고 있는 인구 1,200 정도의 아주 작은 마을이다. 최초 춘삼이 도착한 곳은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굴참나무숲의 맞은 편에 위치한 놀이터였는데 여기서 목격한 것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울굿불굿한 복장을 한 커다란 덩치의 사람들이었다. 조선이 아닌 오랑캐국의 무당마을에 던져진 것으로 확신한 춘삼은 가까운 숲으로 숨어들어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이틀동안은 주먹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간혹 호랑이에게 추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안전한 거처도 마련할 수 있었다. 허나 삼일째부터는 호구지책이 묘연해 져서 버섯이나 야생마 등을 캐먹게 됐는데 이것도 마땅치 않게 되자 산책로 주변의 먹다남은 음식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넘길 때마다 목안을 긁어대는 검은 물은 사약인줄 알았으나 다행히 별 탈이 없었고 뭉크렁한 떡 사이에 떡갈비를 끼워 넣은 음식은 니글거리기 이를 데 없어서 먹기가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식량확보를 위해 산책로를 배회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오랑캐 무당들을 관찰할 기회 또한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