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금왕읍 용계리 마을 풍경

중호네 강아지 호환을 당하다


중호네 강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목줄을 풀어 놓은 게 화근이었다. 산책로와 숲의 경계에 ‘호랑이 출몰지역’ 이란 경고판이 있었지만 개는 문맹이었고 경고를 수용할 수 없었다.

“개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다면 개의 평균수명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의 기호학적 인지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 애견가들에 의해 지원 받아야 한다.”

캐리먼 박사의 이러한 주장을 상기시키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캐리먼 박사는 캐나다 모리스큐 대학에서 동물의 기호인지학에 대해 연구하는 러시아계 미국인이다. 저서로는 87년 제너럴픽스 사에서 발간한 ‘개한테 개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외에 수권이 있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숲은 마을 외곽에 있는 산책로와 뒷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숲은 작은 관목과 다양한 야생화들로 채워져 있었고 뜨문뜨문 굴참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마을사람들에게는 굴참나무 숲으로 불렸다.

숲 뒤의 산은 일명 곰매산으로 산적의 산채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굴참나무숲에서는 호랑이가, 곰매산에서는 산적이 출몰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급적 이 곳을 관통하는 지름길 대신 숲과 산의 옆자락으로 난 길을 이용해야 했다.

간혹 출근시간이 늦어 질까봐 숲을 가로 질러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여럿이 무리를 지어야 호랑이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개를 잃은 중호는 올해로 여섯 살이고 ‘큰꿈어린이집’ 원생이었다. 중호는 마당에 오래된 우물이 있는 2층 양옥 집에 살고 있었고 오른 쪽에는 옅은 자주색 지붕에 연두색 담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단층 양옥집이 있었다.

이 이웃집에는 중호보다 한살 어린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이름은 ‘연주’이고 ‘포아로’ 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포아로 덕에 마을이 호랑이나 산적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포아로는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포아로의 식사담당은 연주인데 기분에 따라 사료의 종류와 양을 가변적으로 공급했다. 포아로를 이용해서 신나게 노는데 성공할 경우 마리폰사(社)의 사료를 한 컵 반 제공했고 포아로가 숨어버리거나 호응하지 않는 경우 두하모사(社)의 사료를 한 컵 제공했다.

간혹 포아로가 팔을 깨물거나 할퀴어서 생채기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연주가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까지 굶는 걸 각오해야 했다. 다행히 연주는 잠을 자고 나면 안 좋았던 기억을 금방 잊어버리는 체질이어서 징벌적 기아상태가 하루 이상 길어진 적은 없었다.

포아로라는 녀석은 그리 쓸모 없는 생명체가 아니어서 최소한 마리폰사의 사료를 요구할 만한 밥값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특히 연주의 보디가드로서 톡톡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연주가 어린이집 출석을 거부하고 동네를 순회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때는 항상 포아로를 대동하고 다녔다.

혼자 다닐 경우 도둑고양이, 개떼, 비적, 새끼요괴 등과 만날 수 있었고 이들은 모두 다섯 살 짜리 여자아이가 대적하기엔 벅찬 상대들이었다.

사실 연주는 1년 전쯤 동네를 배회하다 유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유괴범들로부터 되돌아 올때 함께 데리고 온 게 바로 포아로였다.

동네의 길거리는 위험한 괴생명체들로 넘쳐 났지만 여중생이나 자전거를 타는 노인, 전투력이 부실한 애완견, 까마귀 등 평범한 생명체들 또한 많은 인구비를 차지하고 있었다.

포아로와 달리 이번에 실종된 중호의 강아지는 밥값에 충실한 녀석이 아니었다. 도둑을 지키거나 다른 개의 침입을 막는 데는 소질이 없었고 먹거나 뛰어다니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간혹 중호의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조형물을 훼손하기도 했고 중호의 다리를 물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호랑이한테 물려간 건 가슴 아픈 일이었고 글을 가르치지 못 한게 큰 회한으로 남을 듯 했다.

중호의 아버지는 중호를 위로하고 줄어든 가족 내 개체수를 채우기 위해 애완동물을 한 마리 데리고 왔는데 이 녀석을 마을에 유입시킨 것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는 전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중호의 아버지가 데려온 것은 다섯 가지 색의 깃털로 치장한 앵무새였다.

남아프리카의 게우베돔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으로 두 가지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고 도둑이 들 경우 홀리게 해서 쓰레기만을 훔쳐가게 하거나 잡상인에게 오히려 집안의 물건을 비싼 값에 사가게 하는 술책을 부릴 줄 알았다.

한마디로 영악하고 사특한 종자였던 것이다.

이 녀석은 실종된 개의 이름이었던 ‘퍼니’를 변형해서 ‘퍼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퍼기’는 처음 온 날부터 옆집의 ‘포아로’에게 강한 경계심을 보였고 포아로 또한 이 녀석에 대한 공격적인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호랑이가 개를 물어가고 개를 대신하기 위해 앵무새가 영입된 이 대수롭지 않은 사건 이후 이 마을은 큰 소용돌이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걱정 없는 옆집 여자

내가 사는 집은 작은 아파트였고 3층 3호였다. 흔히들 303호라고 부른다. 302호에는 초등학교 딸 아이를 둔 40대 초반의 부부가 살고 있었고 304호에는 20대 중반 정도되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이 여자를 알게 된 건 1년이 넘었는데 특징이 별로 없는 평범한 처자였다. 박색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이쁜 얼굴도 아니었고 체구는 작지도 크지도 않았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꾸미는 편은 아니었지만 외모에 무관심한 편도 아니었다. 이렇게 평균치에 수렴하는 인상 중에도 뭔가 묘한 느낌을 풍기는 게 있었는데 첨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백치미였다. 복잡한 건 피하고 편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할까? 수학으로 치면 분수나 집합까지는 공부해 주겠으나 2차방정식이나 삼각함수 같은 건 거부할 거 같은 인상이었다. 뉴스나 시사 프로, 다큐보다는 영화나 멜로 드라마, 음악 프로만 편파적으로 시청할 것 같은 타입이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좀 생각 없어 보일 수도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여자들을 골이 비었다고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복잡한 걸 싫어 했으므로 그러한 유형에 대해 반감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런 스타일이 더 생기 있어 보이고 사고방식도 개방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가끔씩 보게 되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느낌이 유독 강한 편이었다. 단순발랄한 이미지에 끌린 건지 가끔 아파트 단지 내에서나 동네 공원에서 마주치면 아주 절제된 범위 내에서 먼저 아는 척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이 여자는 내가 옆집 남자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반사적인 목례로 짧게 답하고 지나쳐 갔다. 예의 그 생각 없는 표정으로. 여느 혼자 사는 처자와 좀 다른 면이 있다면 약간 묘한 취미생활을 곧잘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근처의 수변 공원에서 봤을 때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물 위의 새들을 찍고 있었다. 여자에게 흔한 취미는 아니었다 곧잘 화분과

시체가 놓여있는 상점

내가 처음 그 상점에 발을 들인 것은 한달 쯤 전이었다. 뭔가 살 게 있었던 건 아니고 단지 퇴근길마다 마주치는 이 상점이 무엇을 파는 곳이고 무슨 용도로 이곳에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출입구는 철재 프레임에 유리가 4분의 3을 차지하는 미닫이로 되어 있었는데 고정된 게 양옆에 두 개 여닫는 것이 중앙에 두개 놓여 있었다. 네개의 창문은 어두운 갈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병아리 솜털처럼 아주 밝은 노란색으로 '지봉상회'라는 글자가 문짝마다 한 글자씩 쓰여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손님 다섯 명이 넓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튀긴 과자와 베이컨, 계란말이 등의 안주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행색은 평범했고 분위기는 적당히 흥겨웠다. 그 중엔 언젠가 마주친 적이 있었는지 낯이 익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언제 어디서 봤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았다. 상점에 들어섰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카운터 너머로 주인인 듯 한 사람이 앉아서 무슨 장부같은 것을 보고 있었는데 손님이 드나드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쳐다도 안 보고 인사도 없기에 나도 무시하기로 했다. 내부의 벽면에는 제품용 선반과 냉장고, 냉동고가 있고 뭐 그저 그런 물품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세제, 물티슈, 일회용 컵이나 설탕, 콜라, 맥주, 냉동만두, 냉동핏자, 과자 등등의 것들. 동네 조그만 슈퍼나 편의점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편의점처럼 인테리어가 밝고 세련된 대신 약간 어둡고 소박했다. 파는 물품들 외에 그림이나 사진, 장식품 등이 걸려 있어서 이 곳이 물건을 파는 곳인지 식당 혹은 술집인지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다. 오래된 느낌이 나는 흑백 사진 중엔 ‘Halik’이라는 글자와 파이프를 물고 있는 중년 여자의 사진이 있었고 그 옆엔 레몬 모양 안에 CAN Vitmin C, I’m so green 이라고 적힌 광고판도 보였다. 깡통에 든 비타민C를 먹고 자연에 가까워 진다는 의미일까? 주인에게 비타민C가 어디 있냐고 물었지만 그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 015b 체념적이고 염세적인 멜로디와 가사 힙합비트에 대조되는 장호일의 지치고 매가리 없는 내레이션 이 노래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버림(세월무상) 아마 92년의 봄 혹은 가을이었던 것 같다. 조치원 자취방에서 테입이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곡 당시는 mp3플레이어가 나오기도 전이서 워크맨이라고 불리던 플레이어를 이용하던 시절이었지 많이 우울했었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 했고 시절도 흉흉했었다. 90년대 초반은 물론 80년대 초반에 비해 평화로웠지만 젊고 예민했던 정신으로는 달게 받아들이기 싫었던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육이란 이름으로 전 국가적 차원의 아동·청소년 학대가 서슴없이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강요받고 공부 외에 사춘기 소년이 누려야 했던 모든 문화적, 육체적 즐거움은 통렬하게 박탈당했다. 가출도 했고 반항도 했지만 지금의 아이들처럼 그 당시 학생신분에서 무슨 힘으로 세상을 바꿀수 있었으랴 그저 괴로워 하고 슬퍼하는 수 밖에 그때의 심정은 이런 노래로 대변될수 있었다. 앨범 자켓 속 4명의 장발족들 또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했을 것이다 항상 슬픈 음악에 빠져살았고 염세적인 소설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 없었기에 미래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미래의 불안함도 전혀 괘념치 않았다 오로지 미래만을 보고 사는 지금의 내 모습은 특히 술 자신 후에 위화감을 일으킨다. 이 노래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당시를 회상해 본다.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 015B 정석원 작사 작곡 그저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다시 내 품에 올 것 같았어 둘러보면 넌 항상 내 주위에 맴돌고 있는 줄 생각했었지 네가 곁에 없는 것은 습관처럼 느껴질 뿐 내가 찾으면 돌아올 줄 알았어 어느 날인가 그녀는 영원히 남의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전화 속 친구의 무덤덤한 얘기에 난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지 너에게 한마디 인사도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