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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읍 용계리 마을 풍경

걱정 없는 옆집 여자


내가 사는 집은 작은 아파트였고 3층 3호였다. 흔히들 303호라고 부른다.

302호에는 초등학교 딸 아이를 둔 40대 초반의 부부가 살고 있었고 304호에는 20대 중반 정도되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이 여자를 알게 된 건 1년이 넘었는데 특징이 별로 없는 평범한 처자였다.

박색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이쁜 얼굴도 아니었고 체구는 작지도 크지도 않았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꾸미는 편은 아니었지만 외모에 무관심한 편도 아니었다.

이렇게 평균치에 수렴하는 인상 중에도 뭔가 묘한 느낌을 풍기는 게 있었는데 첨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백치미였다.

복잡한 건 피하고 편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할까?

수학으로 치면 분수나 집합까지는 공부해 주겠으나 2차방정식이나 삼각함수 같은 건 거부할 거 같은 인상이었다.

뉴스나 시사 프로, 다큐보다는 영화나 멜로 드라마, 음악 프로만 편파적으로 시청할 것 같은 타입이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좀 생각 없어 보일 수도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여자들을 골이 비었다고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복잡한 걸 싫어 했으므로 그러한 유형에 대해 반감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런 스타일이 더 생기 있어 보이고 사고방식도 개방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가끔씩 보게 되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느낌이 유독 강한 편이었다.

단순발랄한 이미지에 끌린 건지 가끔 아파트 단지 내에서나 동네 공원에서 마주치면 아주 절제된 범위 내에서 먼저 아는 척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이 여자는 내가 옆집 남자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반사적인 목례로 짧게 답하고 지나쳐 갔다. 예의 그 생각 없는 표정으로.

여느 혼자 사는 처자와 좀 다른 면이 있다면 약간 묘한 취미생활을 곧잘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근처의 수변 공원에서 봤을 때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물 위의 새들을 찍고 있었다. 여자에게 흔한 취미는 아니었다

곧잘 화분과 배양토, 다이소에서 파는 꽃씨, 꽃삽 같은 걸 사들고 오는 장면도 목격 됐고 물감, 이젤 등이 택배로 배송되기도 했다.

가끔씩 클라리넷인지 색소폰인지 알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도레미파솔라시도’나 ‘도미솔 도미솔 라라라솔’같은 멜로디가 들려오는 것을 봐서는 초짜임에 틀림 없었다.

이 청순담백하고 활동적이지만 말수가 적고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여자는 나에 대해 내가 자기에게 가진 관심의 절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서글펐다.

가끔 인사를 나눌 때 작은 미소라도 지어 주길 바라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런데 아주 오래지 않아 나의 이 소박한 소망이 이뤄지게 됐다.

그날은 귀찮음을 무릅쓰고라도 맥주와 쏘시지를 먹어야 했던 날이었다.

막연한 허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뭔가가 먹고 싶을 때는 반드시 먹어 주는게 좋다. 그래서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쏘시지 그리고 담배 한 갑을 사들고 왔다.

문앞에서 도어락의 숫자를 누르고 있을 때 옆집 처자가 숨을 헐떡이며 문을 향해 걸어 왔는데 어두운 청색 상의와 강하게 대조되는 밝은 연회색 치마에는 피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그게 꼭 피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복도의 흐릿한 전등 아래서도 그것이 붉은 색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다. 분명 커피는 아니었고 가능하다면 포도주나 포도주스 정도일 순 있었다. 하지만 왠지 피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런 색깔이었다.

늦은 시간, 졸립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던 나는 좀 멍한 상태였고 그녀의 옷에 묻은 정체 불명의 액체 때문에 사회적 관행에 기초한 자동화된 행동 패턴이 마비되는 걸 느꼈다.

평상시처럼 체념적인 인사를 건네지도 못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냈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엷은 미소를 곁들인 인사였기에 이미 멍청이 상태에 놓여 있던 나는 더욱 더 멍청해 보이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녀의 최초의 웃음 띤 인사와 그녀의 옷에 묻어 있던 피로 추정되는 액체가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쏘시지를 기계적으로 씹으며 맥주를 급하게 마셔 버렸고 서둘러 잠자리에 든 후에도 한동안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 했다.

그일이 있은 지 3일 후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갔다가 편의점 아줌마와 동네 아줌마가 하는 얘기를 엿듣게 됐다.

3일 전 일어난 살인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죽은 채 발견됐는데 사인은 구타이고 사용된 흉기는 주변에 있던 돌맹이였다는 것이다.

돌맹이는 얼마 전 하수구 공사를 하며 파헤쳐 놓은 흙더미에 나온 것인데 하도 여러 차례 가격을 해서 왼쪽 관자놀이와 그 뒷 부분의 뼈가 조각 조각 부서져 있을 정도라고 했다.

죽은 남자는 이 동네 사람은 아니었으나 신원이 확인 되었고 성폭행 전과가 10여차례에 이르는 흉악범임이 밝혀졌다.

아줌마들은 이 사건을 얘기하면서 여러 차례 깔깔거리고 웃었다.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필요 없는 인생의 말로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 따위는 해제된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서 내가 목격한 것이 피가 아닐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졌다.

정황이 분명해 진 것이다.

늦은 밤 귀가하던 옆집 처자가 두 자리 수의 전과범에게 성폭행 당할 위험에 쳐했고 바닥에 있던 짱돌로 가격한 후 분노에 의해, 혹은 확실한 제압을 위해 과도하게 내리치다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미소는 무엇인가?

나에게 보여준 그 미소가 상기시킨 것은 까부는 걸 좋아했던 사촌 여동생이었다. 나를 골리고 장난 치기 좋아했던 그 녀석이 뭔가를 꾸미다 들켰을 때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지어 보이던 겸연쩍은 웃음이 바로 그 미소였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피 묻은 옷을 들켰는데 그녀는 장난 치다 걸린 여자아이같은 그런 웃음을 보였단 말인가?

그 웃음은 옷에 음식을 흘려 칠칠치 못 해 보일까봐 부끄러워 하는 그런 상황에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아무리 생각 없이 살아가는 철없는 아가씨라도 살인은 경우가 다른 것인데...



CCTV도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흉악범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러 CCTV가 없는 곳을 택했을 테지만 정작 자신이 맞아 죽는 장면을 은폐시키는 결과가 되버렸다.

애절하게 범인을 잡아달라는 여론도 없어서 경찰 수사는 무기력했고 의욕도 동기도 없었다.

미제로 마무리 되도 누가 관심이나 갖겠는가?

가끔 나는 옆집 문을 두들겨서 그녀를 불러 낸 후 그 흉악범을 죽였는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됐다. 아니면 목격한 일들을 경찰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한 달 이상이 지났고 그녀와 단지 내에서 또 단지 밖에서 여러 차례 마주쳤는데 볼 때마다 나에게 엷은 미소와 살짝의 눈웃음, 그리고 반갑다는 표정을 곁들인 인사를 건내곤 했다.

인사 뿐 아니라 ‘요즘엔 공원에 자주 안 가시나 봐요’ 같이 좀 더 친밀한 이웃끼리나 나눌 법한 말을 건내기도 했다.

입막음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혹시 나와 가까워 진 후 경찰에 신고했는지 여부를 확인 하려는 걸까?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그러니까 피 묻은 옷을 목격한 이후로 그녀와 가까워 지게 됐다는 사실이 기쁘게 느껴 졌다.

그녀에게 있어 그녀가 저지른 살인은 그저 애교로 덮을 수 있는 작은 실수에 불과했다. 그날 그녀가 보여준 미소와 최근 나에게 비친 요망진 행동은 그런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내가 그녀의 첫인상에서 발견 했던 매력, 단순하고 낙천적인 기질이 더욱 더 확실하게 내 마음을 움직이게 됐다.

나는 그녀와 나를 맺어주고 성불한 성폭행범에 대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처참하게 맞아 죽은 장소를 찾아 술과 담배를 공양하고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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