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에서 라면을 먹다

이미 그곳에 있다면 돌아갈 길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폐가체험을 위해 찾은 이 2층짜리 단독주택은 1층에 거실과 2개의 방, 주방, 욕실이 있었고 주방 오른 쪽의 나무 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2층은 2개의 방과 욕실로 이뤄져 있었다.

우리가 미리 약속이나 한듯이 서둘러 2층으로 이동한 것은 1층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 음울한 기운때문이었는지 모른다.

2층 거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촛불과 등을 켜두니 나름 아늑한 분위기였지만 닫혀있는 두개의 방문에서 언제라도 누군가 튀어 나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우리 세 사람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죽고 못 사는 친구들이었지만 서로 취미가 달라 놀러 갈 때면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는 각자가 제시한 등산, 낚시, 야구 관람이라는 세가지 옵션 중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 했다. 그리고 자포자기식으로 폐가체험이라는 위험한 휴가를 결정해 버렸다.

내 제안이 안 된다면 다른 누군가의 제안도 안 된다는 속 좁은 이기심이 이런 터무니 없는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이다.

셋 다 폐가는 무서웠다. 

폐가체험따위 하고 싶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내가 무섭고 싫은 걸 참아서라도 친구 녀석들을 골탕 먹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라는 심술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폐가체험은 셋 중 하나가 '나 무서워 죽겠으니까 그만 하고 얼른 가자' 라고 말 하는 순간 '아! 쫄보 자식,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라는 비웃음과 함께 순식간에 종료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코펠에 여러가지 것들을 쏟아 부었다. 라면이 메인이었고 햄과 김치, 삼겹살, 깻잎 등이 투척 됐다.

이 잡스러운 레시피는 세 사람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경을 대변하는 듯 했다.

라면이 익고 따끈한 국물에 소주 서너 잔이 속을 후끈하게 덥혀주었을 즘 1층에서 '기기긱~, 텅, 추벅 추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의 얼굴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0.1초의 시차도 없이 같은 시점에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몸도 심장도 돌덩이처럼 차갑게 굳어 버렸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기가 싫었다. 분명 세 사람 다 그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산자락에 홀로 위치한 이 집은 도착한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부자연스럽게 조용했다. 새 소리도 산짐승 소리도 심지어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들의 생존 본능이 이 집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질 것을 경고 받은 것처럼 이 근처에는 죽어 있는 것들 외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고요 속에서 정체불명의 효과음이 안 들렸을 리 없다.

폐가체험을 최초로 제안했던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 났지?"

성호와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고 내키치 않는 현실을 인정했다.

"1층에 누가 있나?"

"너구리나 토끼 같은 거 아닐까?"

"아니, 복도에 끌리던 발소리는 그렇게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는데"

"그럼, 사람? 술주정뱅이? 아니면 술판 벌이려고 찾아온 고딩들?"

"그렇기엔 너무 조용하고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잖아."

많은 말이 오갔지만 그럴 듯한 가설은 찾아내지 못 했다.

그때 '기긱~, 추벅 추벅'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가서 확인하자"

내 제안에 둘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못 했다.

1층으로 내려가긴 무서웠지만 소리의 정체를 모르는 채로 있는 건 더 두려운 일이었다.

몽둥이 같은 걸 들고 내려가지 않았다. 이건 폭력의 두려움이 아니라 존재의 두려움이었고 그 어떤 위협적인 상대와 마주치더라도 맞설 생각 따위는 없었다.

대신 2층 창문으로 뛰어 내리더라도 도망 갈것이라는 묵시적인 합의가 공포에 질린 눈빛을 통해 이미 이뤄진 상태였다.

서로의 옷을 부여잡고 계단을 내려 오다가 세 사람은 또 동시에 얼어 붙었다.

현관 옆의 방으로 들어가는 누군가의 뒷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방문이 닫히기 전에 방 안에서 엷은 빛이 새어 나왔는데 그 빛으로 윤곽과 형태가 파악된 그 정체 모를 존재는 길고 새카만 생머리에 하얀 색 원피스 같은 것 아니면 허리가 잘록하지 않은 걸로 봐서 여자 잠옷 같은 걸 입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말도 행동도 생각도 빨라졌다. 그래야만 살아 나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심장박동이 분당 1,000회 정도로 상승하며 옳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최대한의 피와 산소를 뇌로 공급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그냥 짐 싸서 돌아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정체불명인 체로 남게 될 그 존재를 평생 머리 속에 담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존재가 무슨 사연에서 그 방에 있게 됐는지를 밝혀야 하고 그것이 귀신이나 악령 따위가 아니란 걸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 존재가 떠오를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방문을 열어볼 순 없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몰래 집 밖으로 나가 창문을 통해 안을 확인하자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정말이지 너무나 고요한 밤이어서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올 때 나는 끼긱대는 소리에도 머리가 쭈뼛해지고 방안의 여자가 그 소리를 듣고 문을 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장이 방망이질 치는 걸 느꼈다.

간신히 집밖으로 빠져나온 세 사람은 창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였다. 

항상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칼춤을 춰야하는 건 오직 나였다.

이 망할 체험 여행을 제안한 진우는 이미 나와 성호의 사이, 가장 안전하고 보호 받는 위치에 포지션을 점하고 있었다.

성호는 맨 뒤에서 '나는 너무 머니까 가까이 있는 니가 들여다 봐'라는 표정으로 내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면서 두 녀석 다 '빨리 들여다 보자, 빨리 들여다 보자'라고 재촉했는데 그 소리는 '빨리 들여다 보라'는 소리였다.

깊게 심호흡을 하는 동안 나의 머리 속에선 이 일이 무사히 처리 된 후 어떻게든 이 두 녀석을 응징하겠다는 다짐이 이뤄지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나는 창문의 모서리쪽, 내가 창문 오른 편 아래 숨어 있었으므로 창문의 우하귀 쪽에서 살며시 머리를 들어 올려 왼쪽 눈으로 안을 들여다 봤다.

그때 내가 본것은 방안의 풍경이 아니라 나처럼 창문에 바짝 들이대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홍채의 구분 없이 새까맣고 솔리드한 검정 눈동자에 새빨간 핏줄이 터져나간 흰자로 되어 있는 괴기스러운 눈이 아니었다.

그냥 천연덕스러운 표정이 연상되는 평범한 사람의 눈이었다. 마치 '어라, 이 얼치기 같은 녀석들이 왜 내 방을 엿보는 걸까?'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라고 할까?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귀신의 눈이 아니라서 '아! 반갑습니다'하고 인사라도 건내야 했다는 건가?

'튀어' 라고 외치고 나부터 튀어나갔다.

영문은 몰랐을 테지만 이미 준비되어 있던 두 녀석은 전광석화라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빛과 같은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스타트가 느렸음에도 진우는 나를 앞질렀다. 성호는 '왜?, 왜?'를 연발하며 뒤에서 쫓아 왔는데 그 와중에 자리 깔고 앉아서 이유를 설명할 줄 알았던 걸까?

도망친 거리며 내달린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깐 내달렸던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뛰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직도 칠흑 속에 있고 뒤에서 미친 여자가 눈알을 휘번덕 거리며 쫓아 올 것 같은 상황에서 앞서 달리던 진우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돌부리에 걸린 건지 제 다리가 제 다리에 채인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리가 겹질러져 혼자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일생의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대역무도한 민폐를 끼칠 줄은 몰랐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욕이 목구멍까치 차오르는 걸 억누르고 일단 부축해서 민가로 가자고 독려했고 저주와 원망의 욕지거리를 하는 건 일단 살고 난 후로 미뤄야 했다.

둘이서 하나를 부축하고 연실 뒤를 확인하며 한참을 내려오다 숲을 벗어날 쯤 해서 불빛을 발견했다.

인가였다. 마을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외딴 집이었지만 마당에 불이 켜져 있었고 집안에서도 불빛이 새어 나오는 분명 마을 주민이 사는 집이었다.

아마도 새벽 2~3시 정도였을텐데 외딴 집에 사는 노부부는 TV를 보며 잠이 들고 있던 참이었다.

부시시 눈을 비비며 문을 연 노부부는 밤 늦게 찾아온 황망한 몰골의 불청객들을 보고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부상자까지 발생한 비상상황임을 깨닫고 흔쾌히 집안에 들여 주었다.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모두 망연자실하고 녹초가 된 상태였다.

친절한 노부부는 자식들이 오면 사용한다는 잘 정리된 방을 내주었고 이불을 챙겨 주었다. 방에 불도 넣어 줬다.

공포에 휩싸여 그런 걸 느낄 틈은 없었지만 10월 말의 새벽 날씨는 초겨울 만큼이나 춥고 시려웠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서 이 말도 안 되는 사태를 애써 정리해 보려고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쥐어짜고 있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작은 밥상을 가져 오셨는데 모락 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라면과 잘 익은 김치가 올려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몸이 따듯해질 정도였다.

폐가에서 끓인 라면은 제대로 맛도 못 보고 도망쳐 온 터라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라면 한 그릇은 오첩반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먹는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가 겪은 일을 듣게 됐는데 이 동네는 폐가에서 불길한 일이 자주 발생하니까 장난으로라도 절대 폐가를 찾아선 안 되다고 당부를 하셨다.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잠을 오래 잘 수가 없었다. 셋 다 악몽을 꾸다가 깨고 다시 잠 들면 악몽을 꾸는 걸 반복하다가 날이 밝자 마자 폐가에서 짐을 챙겨 오기 위해 노부부의 집을 나섰다.

발목이 더 부어오른 진우는 남겨 두고 성호와 내가 짐을 챙겨오기로 했다.

간밤엔 몰랐는데 노부부의 집 마당에는 벚꽃나무가 있었고 대문 옆에는 꽤나 키가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엔 은행잎이 이 아담하고 예쁜 집에 운치를 더해 줄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서 폐가에 도착했다.

나는 트라우마로 인해 1층 창문을 들여다 볼 엄두가 안 났고 성호가 아예 창문을 열어 재키고 안을 들여다 보는 무서운 강심장을 과시했는데 안에는 사람이 있었던 자취도 촛불을 밝혔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팔을 움켜쥐고 2층까지 올라가 정신 없이 짐을 챙겨 나왔다.

이 집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더 궁금해 하지도 말고 서로 상기시키지 말 것을 약속하 듯 비장한 눈빛을 주고 받은 두 사람은 밝은 세상이 심어준 용기와 여유 탓에 어제처럼 쫓기듯 하지 않고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왔다.

폐가를 떠나 3분쯤 걸었을 까 산을 오르는 동네 아저씨를 만나게 됐다.

아저씨는 그 시각에 산을 내려 오는, 그것도 폐가 쪽에서 내려오는 우리 모습이 신기했는지 붙잡고서 이것 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난 밤 겪은 일을 상세히 얘기했고 혹시 미친 여자가 그 집을 드나들진 않는지 물었는데 간혹 폐가체험을 오는 젊은 이들은 있지만 혼자 거주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자네들이 하루 신세 졌다는 집은 은행나무집이 맞는가?
마당에 벚꽃나무가 있는 외딴 집 말이여."

"그집엔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데...

몇해 전 자식들이 연락을 끊고 할머니는 치매로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려서
할아버지가 방문을 다 닫고 연탄을 피워 할머니도 죽이고 자기도 죽어 버렸지"

"그 집은 폐가가 되서 사람이 살지 않아

자네들이 묵었다는 집은 다른 집일 거야"

"그런가요? 네 아무튼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는데 친구를 데리러 가는 길입니다"

"이상하다. 이 동네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들만 있지 부부가 사는 집은 자살한 그 부부 말고는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저씨는 산으로 향했고 우리는 서둘러 노부부의 집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잃고 우두커니 노부부의 집을 바라봤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 봤던 그 집이 틀림 없었다. 

짙은 청색의 지붕과 별채가 딸린 오래 된 가옥, 마당 한 가운데 심어진 벚나무와 대문 옆의 은행나무, 그 밑의 장독대까지 우리가 하루를 묵었던 집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봤던 깨끗하고 잘 관리된 상태가 아니라 몇해를 묵은 듯이 보이는 폐가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던 것이다.

마루의 유리는 깨져 있었고 집 안팎의 세간은 여기저기 함부로 나뒹굴고 있었다.

마당과 담벼락에는 사람 허리까지 자란 잡풀들이 무성했고 집 구석 구석에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집이 왜 이 모양이 된거야?"

"우리가 잔 집이 맞아?"

서로 답해 줄수 없는 질문을 쏟아내며 혼란한 머리 속을 최대한 정리해 보려고 했지만 이 있을 수 없지만 벌어져 버린, 눈 앞에서 현실로 닥쳐버린 일이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때 집 안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치고 침울한 목소리로 뭔가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진우는 아직도 우리가 밤을 보낸 방안에 있었다.

벽 가까이에서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구부정해진 허리를 곧추 세우려는 듯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데 두 손을 무릎 위에 둔채 벽의 그을음인지 뭔지 모를 어두운 얼룩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고 죽은 사람의 부릅뜬 눈처럼 단호하지만 생기없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마주한 듯 연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할머니, 라면이 맛 있어요."
"할머니, 라면이 정말 맛 있어요."